은퇴 이후의 시간은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를 다시 묻는 두 번째 인생의 출발점입니다. 이때 20세기 현대미술은 어렵고 난해한 세계가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즐길 수 있는 취미이자, 여행의 이유가 되고, 삶을 다시 정리하게 도와주는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취미, 여행, 삶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은퇴 후 20세기 현대미술과 친해지는 구체적인 방법과 마음가짐을 정리해 봅니다.

취미: ‘배우는 미술’보다 ‘즐기는 미술’로 시작하기
많은 분들이 은퇴 후 “이제 미술 공부나 해볼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미술 책을 펼치거나 강의를 찾아보면, 어려운 사조 이름과 외국 작가 이름, 연도와 사건들부터 나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사실 은퇴 이후에 필요한 미술 공부는 시험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하루의 리듬을 살짝 바꿔주는 ‘즐김’에 가깝습니다. 특히 20세기 현대미술은 형태가 단순하고 색이 대담한 작품이 많아서, 나이가 들어서도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취미 소재입니다. 첫 단계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골라보는 것”입니다. 미술관이든, 미술 책이든, 인터넷 이미지든 상관없이, 20세기 작가들의 작품을 펼쳐 놓고 “이 중에서 집에 한 점 걸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까?”만 생각해 보세요. 피카소, 마티스, 샤갈, 몬드리안, 칸딘스키, 로스코, 워홀 같은 익숙한 이름들의 작품을 모아 놓고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그림을 선택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취미의 시작입니다. 이유를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색이 마음에 들어서”, “모양이 재밌어서”, “왠지 오래 보고 싶어서” 정도면 충분합니다. 취미로서의 첫 미술 공부는 이렇게 ‘선택해 보는 경험’을 통해 슬슬 몸에 스며듭니다. 두 번째 단계는 ‘따라 하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따라 하기는 완벽한 모사가 아니라, 느낌을 가져오는 연습입니다. 예를 들어 마티스의 종이 오리기 작품을 보고, 색종이와 가위를 꺼내 나뭇잎과 사람 실루엣을 마음대로 오려 붙여보는 것, 칸딘스키의 추상화에서 마음에 드는 색 조합과 선의 흐름만 가져와 스케치북에 비슷한 리듬으로 선을 그려보는 것, 몬드리안처럼 흰 종이에 검은 선을 긋고 빨강·파랑·노랑 칸을 임의로 채워 보는 것 등입니다. 이런 활동은 손과 눈을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고, 완성도를 따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담이 적습니다. 무엇보다 “잘 그리기는 늦었어”라는 생각 대신, “지금부터라도 놀아 볼 수는 있다”는 경험을 선물해 줍니다. 세 번째 단계는 ‘작은 기록’입니다. 하루에 10분만이라도 20세기 현대미술 작품 한 점을 보고, 그 그림 옆에 한 줄 감상을 적어보세요. “오늘 본 샤갈 그림의 파란 하늘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피카소의 삐뚤어진 얼굴을 보니, 나도 인생이 참 복잡하게 느껴졌던 시절이 떠올랐다.” 같이 아주 간단한 글이면 충분합니다. 이런 메모가 쌓이면, 어느 날 스스로의 취향과 감정 변화를 돌아보는 ‘미술 일기’가 됩니다. 취미는 결국 ‘자주 다시 하게 되는 것’인데, 20세기 현대미술은 이렇게 마음과 손을 살짝씩 움직이게 하면서도 육체적으로 큰 무리가 없어 은퇴 이후에도 오래 이어가기 좋은 동반자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학생이나 초보자로 규정하며 “이걸 다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미 삶의 많은 장면을 지나온 은퇴자에게 20세기 현대미술은 점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그동안 쌓인 경험과 감정을 색과 이미지로 정리해 보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배우는 미술’보다 ‘즐기는 미술’로 방향을 살짝 돌리는 것, 이것이 은퇴 이후 미술 취미를 오랫동안 이어가는 가장 큰 비결입니다.
여행: 미술관 하나로 여행의 의미가 달라진다
은퇴 이후에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국내외 여행 계획을 자주 세우게 됩니다. 이때 20세기 현대미술은 여행의 목적과 동선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좋은 기준이 됩니다. 단순히 유명 관광지만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이번에는 피카소를 만나러 가는 여행”, “이번엔 샤갈과 마티스를 보러 가는 여행”처럼, 한두 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미술관 동선을 짜기만 해도 여행의 밀도와 만족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파리의 퐁피두 센터, 니스의 마티스 미술관,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미술관 같은 곳들을 지도에 찍어두고 “한 도시에서 최소 한 곳은 20세기 현대미술을 만나보자”라는 기준을 세워 볼 수 있습니다. 굳이 모든 곳을 다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일정상 가까운 곳 한두 군데만 골라 “오늘은 현대미술과 함께 천천히 걷는 날”이라고 정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도시가 전혀 다른 표정으로 다가옵니다. 해외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국내의 여러 미술관과 시립미술관에서도 20세기 현대미술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특히 해외 유명 작가 전시가 열릴 때를 겨냥해 짧은 1박 2일 여행을 계획하면, “서울에 피카소 보러 가는 날”, “부산에서 샤갈 전시 보고 바다 걷는 날”처럼 여행이 더 또렷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미술관에서 몇 시간 머물고, 근처 카페와 공원을 함께 묶어 코스를 만들면, 체력 부담은 줄이면서도 하루가 훨씬 풍부하게 채워집니다.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방문할 때는 ‘다 보겠다’는 욕심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에 한 미술관만 제대로 보고, 그 안에서 특히 마음에 남는 작품 3점만 골라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작품 앞에서 최소 1분 이상 조용히 서 있기, 마음에 드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말해 보기, 기념 엽서나 도록을 한 장 사서 여행 노트에 붙여두기 같은 작은 습관을 더하면,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 경험이 오래 남습니다. 사진에는 잘 담기지 않는 색과 질감, 공간의 공기감까지 기억에 남기려면, 눈과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동행과의 대화입니다. 배우자, 친구, 자녀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면, 미술관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취향과 생각을 공유하는 무대가 됩니다. 누군가는 마티스의 밝은 색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로스코의 조용한 색면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이 그림을 좋아해?”라는 질문을 나누다 보면, 평소 일상 대화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감정과 기억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은퇴 이후, 부부가 다시 서로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자녀와의 세대 대화를 부드럽게 열어주는 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20세기 현대미술은 여행에서 ‘기념 사진’ 대신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남겨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됩니다.
삶: 두 번째 인생을 정리해 주는 현대미술의 시선
은퇴라는 사건은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아니라, “이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묻게 하는 삶의 전환점입니다. 이때 20세기 현대미술을 차분히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연결되는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전쟁과 산업화, 이민과 도시화, 개인의 고독과 자유에 대해 고민했던 20세기 작가들의 작품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을 던집니다. 피카소의 끊임없는 변신은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 가지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 자신의 그림을 부수고 다시 만들었던 그의 행보는, 은퇴 이후에도 사람은 계속 변할 수 있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나는 회사원의 얼굴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다른 얼굴도 꺼내봐도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품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거나, 봉사활동이나 공부, 혹은 전혀 다른 직업을 시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피카소의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새 그림을 준비하던 모습이 좋은 응원이 될 수 있습니다. 샤갈의 몽환적인 풍경과 푸른 밤하늘은 “소중한 기억을 어떻게 품고 살아갈 것인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의 작품에는 어린 시절의 마을, 사랑하는 사람, 동물과 음악, 종교적 상징들이 뒤섞여 등장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장면들을 그리면서도, 그림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는 묘한 평온과 향수가 남습니다. 은퇴 이후, 부모님과의 기억, 젊은 시절의 사랑, 자녀를 키우던 때의 고생과 기쁨이 자주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샤갈의 그림 앞에서 “나에게 이런 파란 하늘 같은 순간이 있었지”라고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지나온 삶을 감사와 애틋함으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로스코의 색면 추상, 폴록의 액션 페인팅 같은 작품은 “지금의 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바라볼 용기”를 건네줍니다. 구체적인 대상이 나오지 않는 대신, 색과 선, 면만으로 이루어진 화면과 마주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이 화면 위에 투영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붉은 색이 거칠게 느껴지고, 평온할 때는 부드러운 색이 더 잘 들어오는 식입니다. 은퇴 후에는 건강 걱정, 경제적 걱정, 관계 변화에 대한 불안이 동시에 몰려오기도 합니다. 이럴 때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색과 이미지에 기대어 잠시 정리해 보는 것은, 조용하지만 깊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20세기 현대미술은, 은퇴 후의 삶을 다시 설계할 때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여러 가지 힌트를 줍니다. 누군가는 마티스처럼 밝고 가벼운 색을 곁에 두며 ‘일상 속 작은 기쁨’을 더 챙기고 싶어질 수 있고, 누군가는 몬드리안처럼 단순하고 정리된 구조 속에서 ‘물건과 관계를 정돈하는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작가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거울 삼아 “나는 앞으로 어떤 색과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천천히 질문해 보는 일입니다. 이 질문을 품고 하루를 건너다 보면, 20세기 현대미술은 은퇴 이후 두 번째 인생을 함께 걸어주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은퇴 이후 20세기 현대미술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젊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색과 모양, 그리고 내 마음의 결을 다시 발견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어렵게 공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취미와 여행, 삶의 정리를 부드럽게 도와주는 친구처럼 곁에 두면 충분합니다. 오늘부터라도 가까운 미술관에서 20세기 작가 한 명을 골라 천천히 걸어 보거나, 집에서 좋아하는 그림 한 점을 찾아 인쇄해 눈에 띄는 곳에 붙여보세요. 그 작은 실천이 쌓이면, 어느 날 삶을 돌아보는 당신의 말과 표정, 하루의 리듬 속에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의 색과 이야기가 배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