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미술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닮게 그리는 ‘구상’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추상과 기하학, 그리고 깊은 감성 표현의 시대로 나아갔습니다. 이 글에서는 칸딘스키, 몬드리안, 로스코 등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추상이 어떻게 탄생했고, 기하학이 어떤 미학을 만들었으며, 그 안에 감정과 사유가 어떻게 스며 있는지 살펴봅니다. 전시장에서 “이게 뭐지?” 싶은 추상 작품을 만났을 때, 조금 더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감상 포인트까지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구상을 떠난다는 것: 추상미술이 탄생한 배경과 의미
추상미술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스타일이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예술가들이 조금씩 구상의 틀을 느슨하게 만들면서 서서히 등장한 결과입니다. 인상주의가 빛과 공기의 인상을 강조하며 형태를 흐리게 만들자, 고흐와 고갱 같은 후기 인상파는 이미 현실의 색과 형태를 과감히 왜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세잔이 사물의 구조를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는 시도를 더했고, 피카소와 브라크는 입체파를 통해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보여주며 이미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어떻게 구성했는지”에 더 관심을 두게 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칸딘스키 같은 작가는 결국 “굳이 대상을 그릴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도달했고, 그 답으로 완전히 비대상적인 추상 작품을 제시했습니다. 추상의 탄생에는 시대적 배경도 깊게 깔려 있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학기술의 발전, 사진과 영화의 등장으로 “현실을 똑같이 재현하는 역할”은 더 이상 회화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사진이 이미 훨씬 정확하게 현실을 기록해 줄 수 있는데, 화가가 굳이 똑같이 그려야 할 필요가 줄어든 것이죠. 예술가들은 “그렇다면 회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기억, 음악, 영적 분위기 같은 비가시적인 영역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추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미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추상미술에서는 더 이상 “이게 무엇을 그린 건가요?”라는 질문이 핵심이 아닙니다. 대신 색의 조합, 선의 방향, 화면에서 무거운 부분과 가벼운 부분의 배치, 리듬과 반복 같은 요소들이 감상의 중심이 됩니다. 음악을 들을 때 “이 멜로디가 무슨 사물인지”를 묻지 않듯, 추상 작품 앞에서는 “이 작업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내 감정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가”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추상미술은 정답이 없는 예술, 해석이 열려 있는 예술로 자주 이야기되며,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적극적으로 가져와서 보는 방식을 요구합니다.
기하학의 언어: 선과 면으로 세계를 설계한 예술가들
추상미술 안에서도 특히 ‘기하학 추상’은 수직과 수평, 원과 사각형, 삼각형 같은 기본 도형을 중심으로 구성된 흐름을 말합니다. 피에트 몬드리안은 이 대표적인 인물로, 나무와 건물, 도시 풍경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스케치하면서 그 구조를 점점 단순화해 나갔습니다. 초기에는 여전히 나무의 가지나 건물의 형태가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곡선은 사라지고 수직·수평선만 남게 됩니다. 결국 그의 대표작에선 흰 바탕 위에 검은 선이 격자를 이루고, 그 사이를 빨강, 파랑, 노랑 같은 원색 사각형이 채우는 형태에 도달합니다. 몬드리안에게 이 단순한 구조는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찾아낸 “보편적인 질서”를 상징했습니다. 기하학 추상은 감정 표현을 억누르는 차가운 형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른 방식의 감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몬드리안은 선과 면의 비율, 색의 위치를 오랫동안 조정하며 화면 전체에 미묘한 균형과 긴장을 만들어 냈고,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리듬과 정서는 결코 건조하지 않습니다. 깔끔한 직선과 고요한 색 면 사이에서 오는 잔잔한 안정감, 혹은 일부 색 면이 한쪽에 몰려 있을 때 느껴지는 어딘가 불안한 느낌 등은 모두 기하학이 만드는 감성의 한 형태입니다. 칸딘스키 역시 원, 호선, 직선, 삼각형 등 기하학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이를 음악적 리듬과 연결해 보려 했습니다. 그의 이론서에서는 삼각형, 원, 사각형이 각각 어떤 성격과 감정을 지니는지에 대한 분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기하학 추상은 미술관 안을 넘어 20세기 디자인과 건축, 제품,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 학교에서 가르치던 이론가와 작가들은 기하학 형태를 기반으로 한 의자, 조명, 건축, 타이포그래피, 책 표지를 만들었고, “형태는 기능을 따라야 한다”는 모더니즘 디자인의 원칙을 시각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흔히 보는 격자형 레이아웃, 단순한 도형으로 구성된 로고, 원색 포인트가 들어간 인테리어는 모두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시에서 기하학 추상 작품을 만났을 때, 단순히 “이게 뭐지?”라는 궁금증에서 멈추기보다, “내가 일상에서 보는 디자인과 공간의 감각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떠올려 보면 훨씬 풍부한 감상이 가능해집니다.
감성의 깊이: 색과 여백으로 말한 추상화가들
추상과 기하학이 자칫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영역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20세기 현대미술가들은 그 안에 매우 깊은 감성을 심어 넣었습니다. 마크 로스코는 대표적인 예로, 그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단지 큰 직사각형 색 면이 겹겹이 놓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작품 앞에 서면 색이 미세하게 스며들고 번지는 경계, 두터운 색층이 만들어 내는 흔들리는 빛, 화면 전체를 덮는 듯한 색의 분위기가 관람자를 조용히 감싸 안습니다. 로스코는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며 묵상하듯 바라보기를 원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의 그림 앞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 평온, 두려움, 초월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감성 중심의 추상 작업은 대상을 지우는 대신, 감정과 분위기를 극대화합니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역시 물감이 흩뿌려진 흔적만으로 격렬한 에너지와 불안, 해방감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구도나 중심이 없지만, 화면 전체로 퍼지는 리듬과 물감의 중첩에서 오는 밀도 덕분에, 보는 사람은 마치 음악의 클라이맥스를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작업들은 “이건 무엇을 그린 것이다”라는 설명 대신, “나는 이 작품 앞에서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라는 경험의 언어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추상과 감성은 대립한다기보다,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며 새로운 감각의 문을 열어 줍니다. 감성적 추상은 오늘날 힐링 아트, 컬러테라피, 인테리어 아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되고 있습니다. 색 면이 주는 안정감이나 설렘, 명상적 분위기를 활용해 카페와 호텔, 사무공간의 벽을 장식하거나, 심리치유의 한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스크린 속 배경 이미지, 앱의 테마 컬러, 앨범 커버, 브랜드 비주얼에서도 추상적인 색과 형태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전시에 가서 추상 작품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제목과 설명을 잠시 잊고 “이 화면 전체를 하나의 분위기, 하나의 기분 덩어리”라고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음에 남는 색, 눈이 자주 가는 부분, 불편하거나 편안한 지점을 짧게 메모해 보는 것만으로도, 작품과의 관계는 훨씬 더 개인적인 층위로 깊어집니다.
구상을 넘어선 20세기 현대미술가들은 추상, 기하학, 감성이라는 세 가지 축을 통해 예술의 언어를 완전히 새로 만들었습니다. 대상을 닮게 그리는 대신, 세계의 구조와 질서, 보이지 않는 감정과 내면, 음악과 같은 리듬을 화면 위에 펼쳐 보였고,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무엇을 느끼게 하는가”에 더 집중하는 감상 방식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제 미술관이나 전시를 방문할 때, 추상 작품 앞에서 당황하기보다 “이 작가는 어떤 구조를 택했는지, 어떤 색과 형태로 어떤 감정을 건네는지”를 차분히 살펴보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 한두 점을 골라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를 하고, 느낀 점을 간단히 기록해 두면, 어느 순간 추상과 기하학이 더 이상 낯선 언어가 아니라, 나만의 감성을 확장해 주는 친숙한 도구로 느껴질 것입니다.